임신 초기 임산부도 떳떳하게 노약자석에 (사지멀쩡하신분들은 제발...노약자석 양보 좀...) 지혜의 길 - 날적이, 명상



저는 외모로는 티가 안나는 초기 임산부입니다.
티가 난다고 해봤자 화장기 없는 얼굴에 덕지덕지 내려앉은 피곤의 기색과
우루사의 무게로 인해 내려앉은 어깨와 전체적으로 힘이 없어 보이는 정도?

요새 주변 사람들이 부쩍 물어오기는 합니다.
"피곤해 보여요, 무슨 일 있어요?"
그럼, 전 "결혼하고 출퇴근에 시간이 더 걸려서 피곤해서 그런가봐요." 하고 대답하고 맙니다.

아직 회사에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남자만 득시글 거리는 회사에서 괜히 유세떤다거나 그런 인식이나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서
천천히 얘기하려고 합니다.

초기임산부.
겉으로는 티가 안나는데, 속은 거의 죽을 지경인 때가 지금이라고 합니다.
누가요?
산부인과랑 책에서요.
가장 위험한 시기이자 가장 힘든 시기라고.

초기부터 좀 안 좋은 기미가 많이 보여서 병원에서는,
"진짜로 회사도 좀 쉬고 집에만 누워있을 수는 없냐.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맘 같아서는 집에서 일어나지도 말고 누워만 있으라고 하고 싶다."
라는 당부를 갈 때마다 들었습니다.
감기도 아니고 1주일 단위로 산부인과병원을 드나들었거든요.

근데 개인회사도 아니고(개인회사라고 쉬게 되겠습니까......)
남의 돈 받고 살아가는 직장인이 애 낳고 복직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요즘같은 시절에
어찌 휴가를 내고 집에 한가히 누워지낼 수 있나요......

매일 아침 전철 35분, 버스 15분~20분이 걸려 회사에 도착합니다.
전철역까지는 아무리 잰 걸음으로 걸어도 제 걸음으로는 10분 가까이 걸립니다.
그나마 임산부라서 뛰지도 말라고 해서 맘만 급하게 뒤뚱거리며 걷지요.

입덧 시작하고 어느 월요일 아침,
붐비는 청담역행 7호선 열차를 마들역에서 탔습니다.
며칠 쉬고 나오는 월요일이라 무리였던지,
자리가 없어 서서 오는 내내 점점 더 창백해졌습니다.

사람은 많아서 여기저기 부대끼고 하면서 힘이 들었지만,
다들 그러고 가는 출근전철이라 참고 견뎠습니다.
그리고,
1대씩만 다니는 버스를 눈 앞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5~10미터 정도를 가볍게 뛰었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탔는데,
태어나서 생전 첨 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온 몸에서 식은 땀이 바짝 나고,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워서 버스에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까지 5정거장 거리라 참고 와 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더 견딜수가 없어서 3정거장 만에 내렸습니다.
길 가에 내 놓은 어느 카페의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간신히 숨을 고르고 좀 나아졌다 싶어서 얼른 몸을 구부린 채로 도로로 걸어나가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버스 2정거장 거리를 택시를 타고 3분만에 회사 앞에 내리니,
친한 동료분이 저를 잡네요.
그 분 부축 받고 간신히 회사까지 걸어들어왔습니다.

임신 전엔 빈혈이 없었는데, 빈혈이 생겼다고 피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빈혈에 무리해서 그런거라고.
만약에 정신 잃고 쓰러지기라도 했으면
그 이후부터는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악착같이 앉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그나마 자리가 남아있는 편인 노약자석에 가면,
어르신들께서 노려보십니다.
티가 안나다 보니 새파랗게 젊은 애가 왜 여기 앉아있나 싶으신거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저도 젊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아 가는 걸 그냥 지나쳐는 안 보아오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젊고 사지멀쩡해 보이는 분들이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이유는 뭘까요?
특히 건장해 보이는 젊은 남자 분들,
하이힐 신고 화장 진하게 하고 향수 뿌린 젊은 아가씨들. (임산부는 대체로 화장도 거의 안 하게 되고, 향수는 기피하게 됩니다. 하이힐은 신으라고 해도 허리/골반이 아파서 못 신거나, 혹은 넘어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 신게 되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음악 들으며, DMB 보며, 스마트폰으로 뉴스 검색해 가며,
거기 떡하니 자리 차지하고 앉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비키라고 하고 싶지만,
말도 잘 안나오고,
그 앞에 서서 가자니 힘이 들어 식은 땀은 흐르고......
제발 기본적인 도덕심은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약자석은 정말 노인, 약자(임산부, 어린 아이, 어린아이를 안거나 업은 사람, 장애우) 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비워둡시다.

그리고, 요즘 지하철과 버스를 보면,
임산부석 분명히 따로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임산부석에 임산부가 앉아있는 경우를 보기는 정말 드뭅니다.

핑크색으로 시트를 지정해 놓은 버스 임산부석,
임산부를 위한 자리입니다. 하고 스트커를 붙여놓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제발 글 못 읽는 척, 자는 척,  그림 뜻 이해 못하는 척 하지 말고,
그 자리들은 임산부들을 위해서 비워주세요~~~~

(임신 초기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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